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재구(河在九)  1832년(순조 32) ~ 1911년

 

자는 치백(致伯)이고, 호는 위수(渭叟)이다. 고조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하한윤(河漢潤), 증조부는 증승정원좌승지 겸 경연관참찬관(贈承政院左承旨兼經筵官參贊官) 하성원(河聖源), 조부는 증호조참판 동지의금부사(贈戶曹參判同知義禁府事) 하필명(河必明), 아버지는 노직(老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른 진사(進士) 하석문(河錫文)이다.

 

약관의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문정공(文貞公) 김세균(金世均, 1812∼1879)을 만났다. 1861년(철종 12)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에 입격하고, 같은 해 경상감사로 있던 문정공의 추천이 있어 효력부위(效力副尉)로 벼슬을 시작하여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가 되었다. 그 후 문정공의 아들 김명진(金明鎭)이 경상감사일 때 추천하여 친군영 군사마(親軍營軍司馬)에 오르고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승차하였다. 1890년 김 공(金公)이 내직으로 들어가 이조참판을 거쳐 공조판서로 승진하면서 공을 높이 등용하려고 하였으나 김 공이 갑자기 병사(病死)하고 공 또한 부친상을 당하여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고종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제수(除授)하고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배위는 숙부인(淑夫人) 정선전씨(旌善全氏) 세각(世覺)의 따님으로 1남 1녀를 두었으니 정현(正鉉)과 거창인 신병민(愼炳民)인데, 정현(正鉉)이 무육(無育)으로 조요(早夭)하고 그 계자(系子) 종순(宗珣) 또한 무육(無育)으로 조요(早夭)하여 공(公)의 아우 재일(在一)의 장자(長子)인 익현(翼鉉)을 공(公)의 차자(次子)로 입계(入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