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경휴(河慶烋)  1841년(憲宗 7) ~ 1900년(광무 4)

 

자는 낙도(洛圖)요 호는 해산(海山)이다. 죽헌공 성(惺)의 8대손으로 자송당 응천(應天)의 현손이며 통덕랑 진채(鎭采)의 손자이고 여범(驪範)의 아들이다.

 

성품(性稟)이 침착하고 재지(才智)가 명민하여 과거(科擧) 공부를 하면서 명성(名聲)이 뛰어났으나 선발(選拔)이 공정하지 않음을 보고는 과업(科業)을 버렸다. 서울에서 문헌공(文憲公) 성재(性齋) 허전(許傳)에게 제자의 예(禮)를 올리고 위기(爲己)의 학문을 닦았다. 효성(孝誠)이 출천(出天)하여 부친상(父親喪)에 충년(沖年)으로 애훼(哀毁)함이 성인(成人)과 같았고, 약관에 모친상(母親喪)을 당했는데 예제(禮制)가 극진하였고 비바람이 불어도 하루에 한 번씩 성묘(省墓)하였다. 또, 선조(先祖)를 받듦에 근면·독실하였다. 항상 말하기를, “대장부는 마땅히 남을 용납(容納)할지언정 남에게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1900년 경자보(庚子譜) 간행 때 교정유사(校正有司)으로 참여했다. 유고(遺稿) 「해산유집(海山遺集)」이 있다.

 

배위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기문(起文)의 따님이니 정효공(靖孝公) 보(補)의 후손이다. 두 아들을 두었으니 구원(龜源), 진원(振源)이고 사위는 충주인 석주홍(石周洪)과 경주인 이종성(李鍾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