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계룡(河啓龍)  1851년(哲宗 2) ~ 1932

 

자는 치견(致見)이요, 호는 단파(丹坡)이니 진사(進士) 증(憕)의 10세손이고 행정(杏亭) 진태(鎭兌)의 현손이며 경진(慶縉)의 손자요 존암(存菴) 복원(復源)의 아들이다.

 

공은 조상을 경모하는 마음이 남달랐을 뿐만 아니라 조상을 기리는 사업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특히 창주(滄洲)와 습정재(習靜齋)에 대한 자부(自負)와 존모(尊慕)는 유달리 커서 사람들이 창정(滄靜)의 통서(統緖)를 이었다고 하였다.

 

공은 큰 벼슬과 공적이 없어 문벌을 빛내거나 세상에 공명을 크게 날리지 않았지만, 공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그가 평범한 향사(鄕士)가 아니라고 하였다. 공의 학문적 바탕은 효성과 우애의 실천에 있었고, 친인척에게 높이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당시 사림의 중망을 받았다. 지역의 선비들 사이에서 명망이 있었음은 공이 진양지(晉陽誌)의 서문을 쓴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공이 하세했을 때에 만사를 지은 사람이 50명에 이르고 이들이 지은 만사가 70여 수에 이른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저서로 단파유집(丹坡遺集)이 있다.

 

배위는 팔계정씨(八溪鄭氏) 상규(尙圭)의 따님으로 2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담산(澹山) 우식(祐植)과 청식(淸植)이고 사위는 안동(安東) 권재한(權載漢), 김해(金海) 허용구(許容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