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순봉(河恂鳳)  1901년(高宗 38) ~ 1971년

 

자(字)는 기언(岐彦)이며 호는 해성(海醒)이다. 창주공(滄洲公) 12대손으로 단파(丹坡) 계룡(啓龍)의 장손(長孫)이고 담산(澹山) 우식(祐植)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침정단상(沈靜端詳)하여 아이들과 노는 것을 즐겁게 여기지 않았고, 담산(澹山)옹이 성품이 엄격하여 법도를 지켜 가르치고 독려함이 심했으나 잘 따르고 어기지 않아 행동에 절도가 있었다. 배움에 이르러서는 그 취지(趣旨)를 잘 이해했고 근면하여 자주 독려할 필요가 없었다. 8세 때 단파공(丹坡公)이 촉석루(矗石樓)에 가서 놀다 오게 하고 그 소감(所感)을 물으니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를 지어 대답했는데 “앞에는 남강이 둘렀고 뒤에는 비봉산이 높이 솟았네. 임진년 풍우(風雨)가 몰아칠 때에 의암(義巖)만이 홀로 원수(怨讐)를 갚았도다.(前帶南江水 後屹飛鳳山 龍蛇風雨時 義巖獨報讎)”라고 했다. 효심이 지극하여 수년간 모부인(母夫人) 병환에 음식과 약을 준비하는 데 정성을 다했으며, 사람들과 사귐에 허심탄회하고 정성이 간절하였으며 불의(不義)에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존중하여 향중(鄕中)에 일이 있으면 공(公)의 말을 듣고서야 결정하였다. 젊어서부터 울증(鬱症) 때문에 학업에 힘껏 노력할 수 없었지만 평소 서사(書史)를 즐겨 보아 지식과 뜻을 넓혔고 선훈(先訓)을 돈독하게 지켜 의(義)와 이(利), 정(正)과 사(邪)의 분변에 명쾌(明快)하였다.

 

배위는 하동정씨(河東鄭氏)로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후손인 순조(淳兆)의 따님이다. 3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오성사 회장 효준(孝俊), 부산문화방송 국장을 지낸 효상(孝常), 성철사 사장 효락(孝洛)이고 사위는 전 LG그룹회장 구자경(具滋暻), 정순민(鄭淳珉), 정승규(鄭承圭)이다. 문집 「해성유고(海醒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