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현령(河玄齡)  1546년(明宗 1) ~ ?

 

공의 자(字)는 인용(仁容)이다. 공은 판충추부사 강장공 한(漢)의 현손으로, 증조는 사헌부장령 계보(季溥)이고, 조부는 선무랑 응(應)이다. 선고(先考)는 기자전 참봉을 지낸 침랑공 취형(就亨)이고 선비(先妣)는 교수(敎授) 강세호(姜世瑚)의 따님이다. 옥종 월횡에서 태어나 남명학의 학문적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천거로 헌릉(獻陵) 참봉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된 후 왜적이 호남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옥종의 정개산이 새로운 산성(山城)으로 지정되면서 영무성 하응도가 별장으로 선임되니, 공 또한 옥종지역의 장정들을 이끌고 의병으로 참전하였다. 진주목사 나정언이 정개산성으로 피신해 온 후로 왜적은 수천의 병력으로 공격하였으니 정개산성이 함락되면서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는데 공의 인척을 비롯한 수많은 지역민들이 희생되었다. 이때부터 무수한 인명피해를 입은 정개산성 너머 골을 억망골(億亡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공의 배(配)는 청천하씨 참봉 응거(應擧)의 여(女)이며, 수민(秀民)·부민(富民) 두 아드님과 따님 한 분을 두었다. 후손들이 월횡문중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