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조헌(河租憲)  1843년(憲宗 9) ~ 1923년

 

공의 자(字)는 중희(仲希) 또는 자천(子千) 이고 호는 월주(月洲) 또는 애헌(艾軒)이다. 공은 장령공 계보(季溥)의 장자 선무랑 응(應)의 13대손으로 찰방공 준해의 9대손이며, 통덕랑 순(楯)의 장자 수희(受熙)의 7대손이다. 증조의 휘는 달홍(達洪)이며, 조고(祖考)의 휘는 서운(瑞運)이고, 선고(先考)의 휘는 상제(相濟)이다.

 

공은 옥종 월횡에서 태어나 족대부(族大夫) 월촌공(河達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장과 글씨가 뛰어나고 행의(行誼) 또한 순백하여 사림에서 무겁게 여겼다. 일찍부터 학문적 재질이 있어 장차 크게 유위(有爲)될 것이라 하였으나 서양열강의 통상요구로 사회가 어수선하니 거업(擧業)을 접고 오로지 위기지학(爲己之學)에만 힘썼다. 평생에 언행이 결백하고 정직하여 거짓이 없었고 진실된 덕을 안으로 쌓아 영문(令聞)이 밖으로 드러났다. 일찍이 월산 조성주, 이곡(尼谷) 하응로 등과 더불어 향약(鄕約)을 만들어 방인(坊人)들을 면려하였다. 양정공의 현창사업(顯彰事業)에 큰 공적을 남겼고, 1890년 진양하씨 대동보 경자보(庚子譜) 편수 시에는 교정(校正)으로 참여하였다. 유고(遺稿)가 전해지며 1996년 간행된 영남 선비 600여 인의 유묵(儒墨)이 망라된 『영남선유묵적(嶺南先儒墨蹟)』에 공의 육필(肉筆)과 해설이 실려 있다. 후손들은 월횡문중으로 옥종면 월횡리와 안계리 등지(等地)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