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계선(河繼先)  ? ~ 1593년(宣祖 26)

 

공은 파조 시중공의 8세손으로 참군(參軍) 휘 자영(自寧)의 5세손이다. 참봉을 지낸 휘 응기(應期)의 증손이며 휘 순호(順浩)의 손자이고 휘 후례(厚禮)의 아들이다. 공의 초휘(初諱)는 계인(繼仁)이며 무과에 올라 감찰(監察)을 지냈다.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하여 진주성으로 달려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다음해 계사년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성이 함락될 때 장렬히 전사하여 호조좌랑(하씨보첩에는 병조참의)으로 증직되었다.

 

공의 부인 진주유씨(晉州柳氏)는 위성(渭成)의 여(女)로 공에게 시집와 세명(世溟) 달명(達溟) 두 아들을 두었는데 왜란 중에 전계남(全溪南)의 부인과 더불어 동시에 사절(死節)하였다. 묘는 진주 남면(南面) 석계리(石溪里) 증봉(甑峰)에 유산(酉山) 쌍분(雙墳)이다. 공의 중자(仲子) 달명의 후손이 고성 대둔면과 마암면 일원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세거하였다.

 

좌랑공은 진주성 창렬사(彰烈祠) 동사(東祠)에 배향되었다. 창렬사는 1593년 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산화(散華)한 순국 선인들을 위해 경상도 관찰사 정사호가 건립하여 1607년(선조 40년) 사액을 받은 곳으로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대상에서 제외되어 존속되었으며,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신위를 맨 윗자리에 모시고 창의사 김천일과 충청도 병마사 황진 경상우도 병마사 최경희 등 진주성에서 순절한 39인의 신위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하계선(河繼先)과 관련된 사록(史錄)

 

•진양속지 제3권 충의조(忠義條)

하계선(河繼先)은 본관이 진양(晉陽)이니 유생으로서 촉석성(矗石城)에서 순절했다.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추증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영조 실록

영조 48년(1772년) 10월 28일, 장령 신이복(愼爾復)이 고(故) 군수(郡守) 신초(辛礎) 등의 공(功)이 곽재우와 같다고 상소하다.

장령 신이복(愼爾復)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고(故) 군수(郡守) 신(臣) 신초(辛礎)·승지(承旨) 신(臣) 하계선(河繼先)·사인(士人) 조방(趙垹)은 위대한 공렬(功烈)이 실로 충익공(忠翼公) 신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같은 공으로 같은 지위에 있어야 하는데도, 유독 증시(贈諡)·증직(贈職)의 은전을 입지 못하였으니 신은 실로 서운하게 여깁니다. 신초는 김해(金海)가 포위되어 궤멸될 때에 왕산(旺山)에다 ……중략…… 하계선은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증손(曾孫)으로 문장과 덕업(德業)이 한 세대에 추중(推重)된 자로서 마침 왜적(倭敵)이 창궐(猖獗)할 때를 당하여 김시민(金時敏)·장윤(張潤)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진양(晉陽)을 지켰는데, 성이 함락되기에 미쳐서 같은 때에 순국(殉國)하였습니다. 그 정충 대절(精忠大節)은 이미 조정에서 정포(旌褒)하고 사당(祠堂)을 지어 제향(祭享)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증시(贈諡)·증직(贈職)에 있어서 마땅히 차등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시민에게는 특별히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을, 장윤에게는 병조 판서를 추증하였으면서 하계선 만이 유독 이 예에서 누락되었으니 실로 영남의 사민(士民)들이 지금까지 애석해 하는 바입니다. 조방 역시 왜적의 난을 당하여 곽재우와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의병을 일으켜……하략……”라고 하니, 답하기를, “청한 바 세 사람은 세 갑자(甲子)가 돌아간 후에 어찌 경솔히 앞질러 포증(褒贈)할 수 있겠는가? 또 이러한 일은 일찍이 금령(禁令)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전후 중략 사이의 기록은 좌랑공 하계선(河繼先)과 관련되는 내용인데, 장령 신이복이 좌랑공 하계선을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사직공계 문효공의 증손인 승지 하계선(河繼先)으로 잘못 알고 ‘승지(承旨) 신(臣) 하계선(河繼先)’이라 하였던 것 같다. 문효공의 증손 하계선은 1470년에 태어나 1522년(중종 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종조에 헌납·지평·승지 등을 지내고 1544년에 졸한 분이기 때문에 임진왜란(1592~1598)과는 관련지을 수 없는 분이다. 그러므로 장령 신이복이 상소한 내용 중 ‘문효공 하연 증손’이라는 말을 제외한 내용은 좌랑공 하계선(河繼先)과 관련되는 내용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