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   급(河   汲)  1738년(英祖 14) ~ 1798년(正祖 22)

 

초휘(初諱)는 국진(國鎭) 또는 섭(涉), 자는 사안(士安), 호는 검암(儉巖)이다.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명상(命祥)의 아들이요, 생부(生父)는 우락재(憂樂齋) 명옥(命玉)이며, 조부는 증가선대부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모검당(慕儉堂) 한명(漢明), 증조는 증통정대부 형조참의 도형(道亨)이고 통훈대부 행이산군수 진룡(震龍)의 5세손이다.

 

정조 4년(1780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통덕랑을 지냈다. 성품이 검소하고 문명(文名)이 드러나, 1778년 정조의(鄭祖毅) 등이 추진한 ‘한수재 선생 화양서원 배향소(寒水齋先生華陽書院配享疏)’의 소색장(疏色掌)으로 천망되기도 하였다. 묘소는 운수동 선비(先妣) 진양정씨 묘아래 해좌(亥坐)이다.

 

배위 공인(恭人) 분성(盆城)허씨는 허옥(許鋈)의 따님으로 허철(許轍)의 손녀요 동지중추 허신(許紳)의 증손녀이고 전주 이사량(李士諒)의 외손녀이며 병사 허동립(許東岦)의 5대손이다. 묘소는 우봉 선비(先妣) 강양이씨 묘아래 임좌(壬坐)이며, 따님 한 분을 두었는데 박광우(朴光遇)에게 출가했다. 계배 공인(恭人) 고창(高敞)오씨는 오후량(吳厚樑)의 따님으로 오상징(吳尙澄)의 손녀요 오필주(吳弼周)의 증손녀이고 상주 김창욱(金昌勖)의 외손녀이며 참판 죽유(竹牖) 오 운(吳澐)의 6대손이다. 묘소는 금곡면 검암리 오도곡 마을 뒤 을좌(乙坐)이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장남은 병일(秉一), 차남은 석두(錫斗), 삼남은 병삼(秉三)이고 따님 한 분은 심의철(沈宜澈)에게 출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