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병일(河秉一)  1772년(英祖 48) ~ 1837년(憲宗 3)

 

초휘(初諱)는 석일(錫一), 자는 시서(時瑞)요, 호는 연정재(烟艇齋)이다. 통덕랑 급(汲)의 아들이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명상(命祥)의 손자이며, 모검당(慕儉堂) 한명(漢明)의 증손이다.

재기가 탁월하고 학문에 잠심(潛心) 하였으며, 과거에 뜻이 없고 자연 속에서 참된 본성을 기르는 데 힘썼다.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 선생을 사사하여 일찍부터 문명(文名)을 얻었으며, 아버지 진사공 휘 급(汲)과 함께 향리의 유림 선비들의 추중(推重)을 받았고, 1822년에는 상주(尙州)의 종손 상식(尙㵓) 공과 함께 파보를 편찬하여 선계(先系)를 정립했다. 문집 「연정재유집(烟艇齋遺集)」이 있다.

 

배위 전의이씨는 생원 이경오(李敬五)의 따님으로 통덕랑 이직양(李直養)의 손녀요 양무공(襄武公) 전양군(全陽君) 이익필(李益馝)의 증손이며 통덕랑 고령 신재연(申在淵)의 외손이다. 아들 두 분은 상현(尙顯), 경현(慶顯)이고, 따님 한 분은 김우균(金右均)에게 출가했다. 계배 상산김씨는 김지준(金智俊)의 따님으로 김명주(金命周)의 손녀요 김진휘(金振輝) 증손녀이고 광주(廣州) 안행대(安行大)의 외손녀이며 진사 낙애(洛厓) 김안절(金安節)의 6대손이다. 아들 네 분, 딸 한 분을 두었는데, 장남은 맹현(孟顯)이고, 차남은 최현(最顯)인데 중부(仲父) 석두(錫斗)에 출계(出系)했다. 삼남은 채현(采顯), 사남은 노현(魯顯)이고 따님은 신돈구(愼敦九)에게 출가했다. 또, 배위는 청풍(淸風)김씨인데, 아들 매현(邁顯)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