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   구(河   久) : 1380년(禑王 6) ~ 1417년(太宗 17)

 

 

문충공 하륜(河崙)의 아들이다. 1402(太宗 2) 아버지의 자질(資秩)로 인하여 23세에 대언(代言)이 되었다. 1408년(태종 8) 총제로서 임금의 거가(車駕)를 제대로 호위하지 못하였다 하여 순금사에 하옥되었다가 3일 만에 석방되었다. 1410년 도총제로서 각을 불던 날에 명에 달려오지 못하여 파면되었다. 이듬해 사헌부에서 청성군(淸城君) 정탁(鄭擢)·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 등과 함께 종묘(宗廟)의 춘향제(春享祭)의 헌관(獻官)으로서 미처 서계(誓戒)하지 못했다 하여 죄를 청하였으나 공신의 아들이라 하여 용서받았다. 또한 부모가 모두 살아 있는데, 시향(時享)의 재계(齋戒 : 致齋)가 있다고 하여, 당번인데도 숙직을 하지 않아 그 죄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특별히 용서하여 주었다. 같은 해 8월에 좌군총제(左軍摠制)로서 병조판서 황희(黃喜)와 함께 약재를 보내준 것을 사은하기 위해 경사(京師)에 갔다 온 뒤 1411년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아버지 문충공이 반대하여 한 달 만에 총제로 강등되었다.

 

1412년 별사금(別司禁)의 좌변제조(左邊提調)에, 1413년 우군도총제에 제수되었다. 1416년에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에 임명되었으나, 아버지 하륜의 상을 당하고 병이 깊어져 1417년 상중(喪中)에 38세의 나이로 졸(卒)했다. 시호는 안평(安平)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손녀이며 이종덕(李種德)의 따님인 한산이씨(韓山李氏)에게 장가들어 사자(嗣子)가 없었으므로 사헌 감찰(司憲監察) 김음(金音)의 딸을 취(娶)하여 아들 복생(福生)을 두었다.

 

전 좌군 도총제 하구의 졸기

 

•태종 34권, 17년(1417, 정유) 10월 19일(신축)

전 좌군 도총제(左軍都摠制) 하구(河久)가 졸(卒)하였다. 하구는 하륜(河崙)의 아들인데, 아비의 자질(資秩)로 인하여 일찍 귀해져 나이 23세에 대언(代言)이 되었다. 위인이 광혹(狂惑)하여 아비의 상중에 있으면서 술 마시는 것이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상을 마치지 못하고 병들어 졸(卒)하니, 나이 38세였다. 3일 동안 철조(輟朝)하고, 시호를 안평(安平)이라 하였다. 아들이 하나인데, 하복생(河福生)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