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기룡(河起龍) : 생졸 미상

 

 

공의 고조는 순충익조공신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된 거원(巨源)이고 증조는 한림학사 을숙(乙淑)이며 할아버지는 신호위(神虎衛) 정용산원(精勇散員) 렴(濂)이다. 신호위공(神虎衛公)의 삼남(三男) 휘 순경(淳敬)은 세종(世宗) 26년(14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을 지낸 후 세조(世祖) 조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올랐는데 공은 이분의 장자(長子)로 태어났다. 공은 세조 5년(1459년) 두 아우 기린(起麟), 기서(起犀)와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병화(兵火)로 문적(文蹟)이 소실되어 자세한 행적(行蹟)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보첩(譜牒)에 통례문 통찬(通禮門通贊)을 지냈다고 되어 있다. 통례문(通禮門)은 조회(朝會)와 의례(儀禮)를 담당하는 관청으로 조선초에 통례원(通禮院)으로 개칭되었으니 통찬(通贊)은 통찬사인(通贊舍人)을 일컫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공은 일찍이 벼슬에서 물러나 환향(還鄕)하여 선군(先君) 때부터 거주했던 대여촌(代如村 : 現 琴山面)을 떠나 진주부(晉州府) 북쪽 사죽리(沙竹里)의 한 마을에 터를 잡고 ‘의(義)를 숭상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단동(丹洞)’이라 일컫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단동은 지내리(池內里)를 합쳐 단지동(丹池洞)이라 칭(稱)하였는데, 단지동은 병판공계(兵判公系) 하씨가(河氏家)의 500년 세거지(世居地)로, 세칭(世稱) ‘하씨 양반마을’이라고 예찬(禮讚)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