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   백(河   伯) : 생졸 미상

 

문과에 급제하고 한성 판윤을 지낸 유(游)의 현손이며 초계 군수를 지낸 지명(之溟)의 증손이고, 저(著)의 손자이며 서천(瑞千)의 아들이다. 어모공파(禦侮公派)의 파조(派祖)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 행 충무위 부사직을 지냈다. 군졸을 자애하고 위엄으로써 다스리고 적을 방어하여 간사한 적들이 준동하지 못하였고, 성품이 호쾌하고 담백하여 강한 뜻이 충만했으며, 과감하고 강직한 장수였다.

 

공(公)은 사천시 사남면 병둔에서 부(父) 서천(瑞千)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기(才氣)가 남달랐고 영채(映彩)가 발월(發越)하였을 뿐 아니라, 도(道)를 강구(講究)할 뜻을 가졌고 벗을 충심으로 사귀었으며, 말은 믿음성이 있었고 행함에는 생각과 뜻이 고상(高尙)하였다. 언론이 공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히 경모(敬慕)하는 마음을 갖게 하였고, 동우(同友)와 함께 경의(敬義)의 설(說)을 가슴에 새겨 학문적 포용력(包容力)을 길렀다. 자신의 수양과 더불어 고을의 풍속(風俗)을 교화하는 데 앞장섰고, 천성이 선도(善道)한 자질을 타고나 부지런히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가정에서는 효우를 다하고 조정에 나아가서는 강직하게 간언하는 기풍이 있었다.

 

일남(一男)을 두었는데 내금위건공장군(內禁衛建功將軍)을 지낸 구지(龜止)이다. 구지(龜止)는 삼남(三男)을 두었는데, 응기(應箕)는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을 지냈고, 응규(應奎)는 별시위 어모장군(別侍衛禦侮將軍)이고, 삼남(三男)은 응회(應會)이다. 응기(應箕)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몽일(夢日), 몽열(夢說)이며 딸은 정승형(鄭承亨)에게 시집갔다. 몽일(夢日)과 몽열(夢說) 형제는 무예(武藝)로 이름이 드러났으며 특히 몽열(夢說)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지냈다. 응규(應奎)는 일남(一男)을 두었는데 조해(朝海)이고 응회(應會)는 이녀(二女)를 두었는데 최용회(崔龍會)에게 시집가고 차녀(次女)는 권대형(權大衡)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