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재정(河再淨) : 1575년(宣祖 8) ~ ?

 

자는 응회(應會), 호는 영모정(永慕亭)이다. 생원 구천(遘千)의 현손이고 사헌부 집의(執義) 돈재(遯齋) 충(沖)의 증손이며, 생원공(生員公) 낙포(樂圃) 종억(宗嶷)의 손자요, 진사(進士) 유(鮪)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밀양을 거쳐 북상하게 되면서 대항마을의 하씨 종족(宗族)은 거의 참화를 당하거나 실종되었는데, 당시 18세의 나이였던 공이 홀로 살아남아 청송 땅으로 피난하면서 그 와중에도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시를 읊었는데 그 시문이 전해지고 있다. 7년간의 전란이 끝나고 귀향(歸鄕)하던 날에 공은 왜적에게 항거하다가 죽어간 친족들에 대한 서글픔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하여 뒷산 언덕 선산(先山)의 옛터에 재실을 지어 영모(永慕)라 편액을 걸고 그 뜻을 서술했는데 그것은 어지신 돈재공과 그 아드님 낙포공을 추모함이었다. 벼슬은 내금위 부사정(內禁衛副司正)을 지냈다.

 

배위 경산전씨(慶山全氏)는 장사랑 초복(初復)의 따님으로 4남 1녀를 두었다. 장남 윤구(潤九)는 찰방(察訪)이고 차남 윤경(潤京)은 감정(監正)에 추증되었으며, 3남 윤성(潤城)은 찰방(察訪)이고 4남은 윤방(潤邦)이며 사위는 밀성인(密城人) 손각(孫覺)이다. 묘소는 밀양 대항면(大項面) 별묘등(別廟嶝) 임좌(壬坐)에 쌍분(雙墳)이고, 은진(恩津) 송재직(宋在直)이 지은 묘갈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