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이태(河以泰) : 1751년(英祖 27) ~ 1830년(純祖 30)

 

자는 오겸(五兼)이요 호는 함와(涵窩)이다. 석계공 세희(世熙)의 증손자이며 달중(達中)의 아들이다. 공은 태와공(휘 必淸)의 문인인 남계 이갑룡(1734~1799)의 제자인 남고 이지용(1753~1831)과 종유하였으며, 학행이 뛰어나 덕천서원 원장을 지내고 대각서원을 중수하는 등 남명학맥의 현양(顯揚)사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조 송정공이 유식(遊息)하던 곳에 재실을 지어 낙수암이라 하였고, 그 옆에 시조공의 사우를 지어 시조공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송정세과』를 간행하여 삵실 문중을 현창하고, 단목 단지공의 후손 하진우(河鎭禹)와 함께 진양하씨 대동보인 경진보(庚辰譜)를 편수하였다.

 

만년에는 낙수암 옆에 아들들이 공을 위해 3칸의 서재를 건립하였는데, 공이 함청헌(涵淸軒)으로 명명하여 편액을 달게 하고 벽에는 무자기(無自欺 : 자신을 속이지마라)를 써 붙였고 기둥에는 승직준평(繩直準平 : 먹줄같이 곧고 수준기처럼 공평하다)의 네 글자를 써 붙여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공은 성품이 곧고 강직하면서도 후중하였으며 집에 있을 때도 바른 몸가짐을 가졌으며, 매일 밤이 깊어서야 여러 아들들과 며느리 손자 등의 남녀가 차례대로 들어와서 혼정(昏定)하게하고 닭이 울면 세수하고 빗질하고 또 들어와 신성(晨省)하게 하였다. 80년을 한결같이 선(善)과 의(義)를 실천하였으며 소학과 내칙으로서 모범을 보여 여섯 아들 모두 효우와 학문으로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게 키웠는데 용와 진현, 고재 경현, 응현, 정현, 사와 대현, 묵와 계현 등이 바로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