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경현(河景賢) : 1779년(正祖 3) ~ 1833년(純祖 33)

 

자는 유중(孺仲)이요, 호는 고재(顧齋)이다. 송정공(松亭公) 8세손이며 석계공(石溪公) 세희(世熙)의 현손이요 함와공 이태(以泰)의 차자(次子)이다.

 

일찍부터 집안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평상시에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였고,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성리의 학문에 종사하더니 상주의 우산(愚山)에서 글을 읽으면서 역병에 걸렸다. 입재(立齋) 선생이 날마다 두 번씩 병을 묻고 살폈는데, 그때마다 공은 옷을 반듯이 거두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어느 날 또 와서 물으니 공이 이르기를 “지금 마침 땀을 내고 있으니 빌건대 들어오지 마소서”하였으나 선생이 문을 열고 보니 땀이 흘러 몸이 흠뻑 젖었는데도 관과 옷을 바로 정돈하기를 상시와 같이 하였다. 입재 선생이 감탄하여 이르기를, “산해(山海)의 경의(敬義)에 대한 가르침이 군(君)에게서 더욱 징험(徵驗)된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평하기를 그의 용기는 병사가 적군에 대적하는 것과 같으며 절개는 추운 겨울에 서 있는 소나무와 같다고 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 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고, 「오방재 중수기」 「대각서원 중건기」 등과 많은 시문을 남겼다. 현손 하여해(河汝海)가 편집하고 곽종석(郭鍾錫)이 교정하여 1959년 5세손 하회근(河晦根) 등이 『고재집(顧齋集)』을 간행하였는데 서문은 문소 김황이 썼다.

 

묘는 사곡리 덕곡 안산에 있으며 후산 허유가 찬한 행장, 대계 이승희가 찬한 묘갈명, 면우 곽종석이 찬한 묘지가 있다.

 

배위는 파평윤씨(坡平尹氏) 택오(宅五)의 따님으로 1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석운(錫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