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봉운(河鳳運) : 1790년(正祖 14) ~ 1843년(憲宗 9)

 

자(字)는 치서(致瑞)요, 호(號)는 죽헌(竹軒)이다. 경상도사(慶尙都事)를 지낸 송정(松亭) 수일(受一)의 9세손이며 죽와(竹窩) 경태(慶泰)의 손자요 예암(豫菴) 우현(友賢)의 장자(長子)이다.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종조부 함와공(涵窩公, 諱 以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면서 글을 익혀 문예가 숙성하였다. 15세 때는 모친이 세상을 떠났고 연이어 동생마저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겪었다. 독신 대종손으로 송정대종가의 집안일을 혼자서 이끌어 가야하니 학문에 전념할 겨를이 없었다.

 

공은 연계재의 중창, 향안(鄕案)의 교감(校勘), 『겸재집』의 간행 등 지역의 유림사업(儒林之事)에 앞장섰으며 덕천서원 원장의 중책도 맡았다. 또한 오방재의 중수, 각재 선생 비석 건립, 낙수암 중건 등 보본사업(報本事業)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830년 금산 소재 경림서원에 봉안된 학봉 김성일 선생의 일로 안동에 갔을 때 대산 이상정 선생의 사당을 참배하고 병산서원과 청량산 등을 둘러 퇴계 선생과 서애 유성룡의 학덕을 기리기도 하였다. 시조공의 경절사 제향 시에 소요되는 제수 마련을 위한 종계에 대대로 내려오는 고려답 2구를 귀속시키는 전례 없는 일도 하였다. 공이 자신의 서재에 죽헌(竹軒)이란 편액을 달고 그 연유를 서술한 『竹軒記』 그리고 대나무와 같은 군자의 곧은 절개를 지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竹軒銘』이 전해진다.

 

배위는 은진임씨(恩津林氏) 박(璞)의 따님으로 4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재후(載厚), 재윤(載潤), 재주(載柱), 재악(載岳)인데, 재악(載岳)은 숙부 제운(濟運) 후(后)로 출계(出系)했다.

우정(于亭) 성환혁(成煥赫)이 지은 갈명(碣銘)이 있고, 문집 죽헌집(竹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