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협운(河夾運) : 1829년(純祖 29) ~ 1906년(光武 10)

 

자는 한서(漢瑞)요, 호는 미성(未惺)이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내고 수자(壽資)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다. 송정공(松亭公) 후손이며 함와공 넷째 아들인 정현(正賢)의 둘째 아들이다.

형님의 손자인 겸진(謙鎭)이 어렸을 때 그 재기(才器)를 바로보고 항상 훈육에 주의하였으며, 형(兄)에게는 깊이 감추어 주고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그 대성(大成)을 기(期)하도록 근고(謹告)하였다. 1900년 경자보(庚子譜) 편찬에 도유사(都有司)로 참여했다.

 

배위는 증숙부인(贈淑夫人) 진주강씨(晉州姜氏)로 택주(宅周)의 따님이고, 1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재규(載奎)이다.

종손(從孫) 겸진(謙鎭)이 지은 묘표(墓表),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과 만성(晩惺) 박치복(朴致馥)이 각각 지은 호설(號說), 두산(斗山) 강병주(姜炳周)가 지은 미성재기(未惺齋記)가 있고, 유고(遺稿)로 미성집(未惺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