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위보(河魏寶) : 1527년(中宗 22) ~ 1591년(宣祖 24)

 

자는 미재(美哉)이다. 목사공 우치(禹治)의 장손이며 승사랑 숙(淑)의 장자이다. 외조(外祖)는 16세기에 문장가로 유명한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을 지내고 상호군으로 사직하여 진주에 은거하였으니 공이 외조의 문하를 일찍부터 출입할 수 있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학업을 부지런히 닦았으며, 남명(南冥) 선생에게 집경(執經)수업하지는 않았으나 일찍부터 두 동생과 함께 문하(門下)를 출입하여 학문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크게 신임을 받았다. 명종 13년 무오(戊午, 1558년)에 사마시(司馬試)에 입격(入格)하여 성균관에서 수학(修學)했는데 여러 선비들이 경모(敬慕)하였고, 누차 향시(鄕試)를 마쳤으나 늘 일이 어긋나 대과(大科)에 응하지 못하게 되니 과업(科業)을 폐하였다. 임천(林泉)에서 덕업(德業)을 쌓으면서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과 각재(覺齋) 하항(河沆) 양현(兩賢)과 교분이 매우 두터웠다. 명종 21년(1566년) 진주목사 박승임이 북면의 사죽리에 서재(書齋)를 설치하여 공에게 훈회(訓誨)를 주관하게 했는데 후진(後進)들이 성취하는 바가 많았다. 공은 천품이 순수(純粹)하여 효우를 다하였고, 상장(喪葬)과 제사(祭祀)를 한결같이 예제(禮制)에 따르니 사우(士友)들이 흠복(欽服)하였다. 아들의 공훈으로 이조판서 진평군(晉平君)에 추증되었다.

 

공의 초배(初配)는 사천이씨(泗川李氏)인데 증참의(贈參議) 휘 윤(綸)의 따님으로 일곱 아들을 두었으니 항(恒), 침(忱), 각(恪), 척(惕), 증(憕), 경(憬), 성(惺)이요, 두 딸을 두었는데 장녀는 판관 박천정(朴天禎)의 처이고 차녀는 참판 윤무(尹茂)의 처이다. 후배(後配)는 진주강씨(晉州姜氏)인데 증참의(贈參議) 휘 우(佑)의 따님으로 네 아들과 한 딸을 두었는데, 두 아들과 딸은 일찍 죽고 두 아들이 있으니 변(忭)과 협(悏)이다.참판공파·죽재공파·우계공파(參判公派·竹齋公派·愚溪公派) 후손 일동(一同) 삼가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