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윤일(河潤一)  1689년(肅宗 15) ~ 1767년(英祖 43)

 

공의 자(字)는 택선(澤善)이고 호는 죽촌(竹村)이다. 단지공 진사(進士) 협(悏)의 증손(曾孫)이며 용강공 달한(達漢)의 손자이고 설(渫)의 중자(仲子)이다.

어려서부터 자품(資稟)이 온후(溫厚)하여 망동(妄動)하는 일이 없었다. 일찍이 가학을 이어받았고 대소헌의 현손(玄孫)으로 단성에 거주하던 묵재(黙齋) 조석규(趙錫圭)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당시 사회의 부패와 분경(紛競)의 비리(非理)가 횡행(橫行)하는 것을 목도(目睹)하고 그 폐단(弊端)을 개탄(慨歎)하면서 거업(擧業)을 접고 오로지 자신의 수양과 강구저술(講究著述)에만 전념하였으며 노년(老年)에는 시서(詩書)와 잠훈탐구(箴訓探究)에 경심(傾心)하면서 성리(性理) 탐구에 더욱 정진(精進)하였다. 1719년 기해보 편수 때 사판유사(寫板有司)로 참여했다. 족(族)후손 회봉 하겸진 찬(撰) 묘갈명과 재령 이현덕(李鉉德)이 찬한 행장이 전해지고 문집(文集)이 있다.

 

배위는 의령남씨(宜寧南氏) 천해(天海)의 따님으로 4남을 두었으니 응춘(應春), 응하(應夏), 응추(應秋), 응동(應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