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응휘(河應彙)  1709년(肅宗 35) ~ 1786년(正祖 10)

 

자(字)는 회여(會汝)요, 호는 사시헌(四時軒)이다. 진사(進士) 협(悏)의 현손이며 달천(達天)의 증손이고 윤창(潤昌)의 계자(系子)이니 생부(生父)는 윤석(潤碩)이다.

 

유년부터 영오(穎悟) 하여 성리학에 정진(精進)하였다. 육예(六藝)의 글과 백가(百家)의 편(編)을 항상 가까이하였으며 사악(邪惡)함과 간사(奸邪)함을 멀리 하였다. 인생에는 기(饑), 한(寒), 궁(窮), 곤(困)의 불청사환(不請四患)이 따르게 마련인데 하늘의 운행(運行)에도 마치 춘·하·추·동이 있어 모진 겨울과 같은 계절도 있으나 봄에 잎 피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어려움을 순순히 감수하는 철리(哲理)를 궁행(躬行)하겠다는 자경(自警)과 다짐으로 자호(自號)를 사시헌(四時軒)이라 하고, 자제(子弟)에게도 항상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종사에 특기할 족적(族跡)은 초간보(初刊譜)인 진양하씨 기해보(己亥譜) 후 50여 년 동안 중수(重修)하지 못하여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윤일(潤一)과 응명(應命) 등 제족(諸族)이 보사(譜事)를 시작하였으나 연이어 하세(下世)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종인(宗人)들의 협력을 얻어 1770년에 일을 마쳤다. 이 족보가 진양하씨 경인보(庚寅譜)이며 공이 발문(跋文) 하였다.

 

배위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충의위(忠義衛) 의무(宜茂)의 따님으로 4남을 두었다. 은호(殷浩), 주호(周浩), 우호(禹浩), 장호(長浩)인데, 장호(長浩)는 당숙(堂叔) 응래(應來) 후(后)로 출계(出系)했다.

족후손(族後孫) 우(㝢)가 지은 행장(行狀)과 중재(重齋) 김황(金榥)이 지은 묘지(墓誌)가 있고 문집(文集) 「사시헌집(四時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