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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會長  河 萬 九

진양하씨(晉陽河氏) 문하시랑공파(門下侍郞公派) 홈페이지 방문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2024년 새해를 맞이하여 항상 건강 하시고 가내에 행운이 가득 하시길 기원 합니다. 진양하씨는 고려시대부터 진주의 토성(土姓)으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416년 4월17일 태종실록(太宗實錄) 3번째 기사에 의거하여 진주 미천 오방리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영의정(領議政) 문충공(文忠公) 호정(浩亭) 하륜(河崙1347-1416)의 선고(先考)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 하윤린(河允潾) 신도비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91호) 전면과 후면의 기록에서 진양하씨의 족보(族譜)의 종사(宗史)가 시작됩니다.

 

한국 족보는 1423년(세종5년)에 편찬된 문화류씨(文化柳氏) 영락보(永樂譜)이나 이보다 7년 앞선 기록으로 60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 글씨가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 최초의 족보입니다.

 

진양부원군 신도비의 기록으로 1621년 시조(始祖) 하공진(河拱辰,-1011) 선생의 18세손(世孫) 창주(滄洲) 하증(河憕,1563-1624 滄洲公派)공 께서 처음으로 진양하씨 족보를 만드시고 1719년 족보가 인쇄되어 배포되기 시작 하였다.

이후 1770년,1820년,1900년, 발행되고 1936년 진주 수곡(水谷) 청아(菁莪) 하영욱(河泳旭, 1882-1940,30世 松亭公派)공 께서 경성부(京城府) 안국동(安國洞) 중앙인쇄소에서 발행한 진양하씨 족보의 세계(世系)를 그대로 옮겨 2015년 진양하씨 대동보(晉陽河氏 大同譜)를 발간 배포하고 동시에 인터넷 족보를 개통하였다.

대동보 수권(首券)과 인터넷족보 "뿌리탐구"에는 진양하씨 천년역사(千年歷史)가 기록되어있다.

 

1719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족보와 파보(派譜)가 발행 배포 되었습니다.선조님의 빛나는 업적과 유훈을 받들고 다음 세대에 이어가게 하는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명입니다.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 상호간의 돈목과 화합으로 진양하씨가 더욱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후대에 전승 하는것이 우리 후손들의 몫이라 생각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할것을 다짐합니다.

항상 건강 하십시오

 

2024년 1월2일

晉陽河氏 門下侍郞公派 宗史硏究會長    河  萬  九

 

 

 

 

 

 

▲ 진양부원군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