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도곡정사

 

 

도곡정사

 

도곡정사는 효자인 진사 재원(載源) 공의 후손들이 공의 정려(旌閭) 표창(表彰)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후진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정사(精舍)는 크게 몸채, 문간채, 아래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몸채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목조 팔작지붕의 기와집이고, 건물 안에는 증손 순정(舜楨)이 집을 짓고 그 기쁨을 읊은 시와 정면규(鄭冕圭)의 「道谷精舍贊」, 1911년 안동인 권운환의 「道谷精舍記」, 1932년 송산(松山) 권재규(權載奎) 찬 「道谷精舍 重建記」 등의 시와 기문이 있다.

 

 

도곡정사기(道谷精舍記)

 

진주 남쪽 30리에 영천(潁川)이라는 강이 있다. 산이 두류(頭流)에서 나와 동쪽으로 구불구불하게 벋어 강에 이르러 그쳤다가 되돌아가서 오묵한 곳을 만드니 도곡(道谷)이라 이르는데, 근세의 효자이신 고(故) 하공(河公)이 살던 곳이다. 공이 일찍이 자호(自號)하여 도곡(道谷)이라 하였으니 지명에 연유한 것이다. 공이 졸하자 집 앞의 산에 장사지냈는데, 그 산 아래에 정려각이 우뚝하여 사람의 이목을 환하게 하니, 곧 공의 효성을 표창한 정려(旌閭)이다. 정려 곁에 한 재실(齋室)이 있어 도곡정사라고 편액을 걸었으니, 공의 뜻을 잇고, 겸하여 자손들이 학문을 닦는 곳이다. 하루는 공의 사손(嗣孫) 순정(舜楨)이 운환(雲煥)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생각건대, 내가 친구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감히 사양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생각하니, 공의 효성은 한결같이 본성에 따른 것이지, 억지로 힘써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니, 비록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매우 간절(懇切)하여 사람을 감동시켰다. 태학(太學)에 들어간 후 벼슬에 천거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으나, 연로한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할 뿐, 절대로 다른 마음을 갖지 않았다. 대체로 공의 생각인즉, 오늘 어버이를 이별하고 내일 만종록을 얻는 것은 반드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이른바 고인(古人)이 하루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三公)과 바꾸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진실하고 절실한 말임을 공에게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이란 잠깐 동안에는 행하기 쉽고 오랫동안 행하기는 어려운 법인데 공이 행하여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하루도 행하기 어려운 것을 일생을 하루같이 행하였으니, 소위 열심히 시중들다가 죽음에 이르고 종신토록 사모한다는 것을 공에게서 볼 수 있다. 종족(宗族)과 살고 벗들과 사귐에 좌우에서 근본을 따르고 각각 그 적의(適宜)함을 얻었으니 하나같이 이 모두가 효에 기인(基因)한다. 오호라, 오랑캐가 들어와 야만인이 된 오늘날, 만약 공에게 임금을 섬기게 했더라면 참으로 정성을 다하여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대의를 펼쳤을 것인데, 공을 저승에서 불러올 수 없는 것이 한(恨)이다.

 

공의 후손된 자는 과연 자기 몸의 소중함을 알아서 오랑캐와 짐승처럼 되지 않게 하고 공의 효성을 뒤따른다면, 근원이 깊고 적덕(積德)이 두터워서 훗날까지 발흥(發興)하고 더욱 빛날 것이다. 내 이 수 칸 정사(精舍)가 산수(山水)와 시종(始終)을 같이 할 것을 아니, 이것은 공의 정신을 후손들이 잘 계승하는 데 있으니 명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