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진달(河鎭達)  1778년(正祖 2) ~ 1835년(獻宗 1)

 

자(字)는 영서(英瑞)요, 호는 역헌(櫟軒)이다. 생원공(生員公) 명(洺)의 현손이고 해호(海浩)의 아들이다. 생부(生父)는 단주공(丹洲公)의 5세손이요 오오당(五吾堂) 윤채(潤采)의 손자인 수호(壽浩)이다.

선세(先世)의 유문(遺文)을 모아 추모록(追慕錄) 4권을 엮었고, 임천서원이 퇴락하여 각 문중과 더불어 중건하고 강당과 문루까지 완비하였다. 문충공 문집이 병화 뒤에 보존되지 못해 공이 극력 수집하여 호정집을 엮었고, 문충공이 찬한 촉석루, 봉명관 기판(記板)을 잃어 공이 모두 중간(重刊)하여 걸었으며, 오방재 검암서숙(黔巖書塾)이 거의 무너지게 되니 제종(諸宗)과 중건하여 후생들의 수업(受業) 장소로 삼았다. 1824년 오방재 재임(齋任)으로 중수기(重修記)를 썼다.

 

배위는 진주강씨(晉州姜氏) 각(珏)의 따님으로 두 아들을 두었으니 세범(世範)과 일암(逸庵) 극범(極範)이다. 문집(文集) 「역헌집(櫟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