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계락(河啓洛)  1868년(高宗 5) ~ 1933년

 

공의 자(字)는 도약(道若)이고 호는 옥봉(玉峰)이다. 송강공 항(恒)의 10대손이고, 지수헌의 증손인 진명(鎭明)의 현손이며 농은(農隱) 경칠(慶七)의 손자이다.

 

수곡 효자동에서 송담(松潭) 두원(斗源)과 연일정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늘 책을 가까이 하였다. 8세 때 모친상을 당했으며, 17세 때 밀양박씨 인호(仁浩)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박 씨는 면우 곽종석의 생질이요 사촌(沙村) 박규호(朴圭浩)의 종질이다. 『진양속지』 「열행조(烈行條)」에 “부인 밀양박씨는 천성이 순하고 효성스러워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공경하는 등 예의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고, 특히 계시모(繼媤母)를 섬기는 데에 정성을 다하니 향리에서 모두 그 효행에 감복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공은 1895년에는 백촌 하봉수·회봉 하겸진 등과 남해 노량을 유람하면서 이충무공 사당에 참배하였고, 이듬해엔 조부의 명으로 백원서숙(百源書塾)을 지어 많은 선비들과 학문을 연마하였다. 1897년에는 백촌 하봉수·약헌 하용제 등과 삼가 뇌룡정을 경유해 성주 대포(大浦)로 가서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학덕을 기리는 사당인 삼봉서당(三峯書堂)을 참배하였고, 돌아오는 길에 교우 윤주하·회당 장석영·대계 이승희 등 한주의 제자들과 성주 무흘산에 들어가 한강 정구 선생의 유적을 둘러보았다. 1898년에 면우 선생을 모시고 단성 남사에서 향음주례를 했으며 다음해에는 거창 다전으로 가서 면우 선생에게 배우기를 청하였고, 고향 수곡에서 극재 하헌진·회봉 하겸진 등과 낙수암에서 글을 읽었는데 이때 공은 “회봉은 재주가 높아 미치기가 어렵고, 극재는 행동이 독실해 본받을 만하다”고 하면서 두 선비의 장점을 본받고자 하였다. 당시 청곡사에서 진행되던 남명 선생의 문집 중간(重刊)의 일을 도왔고, 면우 선생이 대원사에서 ‘주자어류’를 간행할 때도 참여했으며, 면우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이동서당 건립과 ‘면우집’ 발간 때도 힘껏 도왔다. 1925년에 운곡(雲谷)의 가덕리로 이주하였으며, 만년에 뜻이 맞는 선비들과 수곡 창촌에 만수당(晩修堂)을 세우고 백촌 하봉수·회봉 하겸진 등의 덕망 있는 선비들과 함계 계(契)를 조직하여 학문을 강론하고 시(詩)를 읊조리며 평생을 보냈다. 만수당에는 지금까지 공이 쓴 기문이 걸려있다. 유고(遺稿) 「서헌유집(西軒遺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