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만기(河萬璣)  1890년(高宗 27년) ~ 1985년 乙丑

 

공의 자(字)는 진명(晉明)이요, 호는 만산(晩山)이다. 공은 죽헌공(竹軒公) 12대종손으로 번와(樊窩) 진동(鎭東)의 6대손이고 계운(啓運)의 손자요 구식(九植)의 아들이다.

 

공은 조상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한평생 행하였고, 고가(古家)의 유범(遺範)을 어김이 없었다. 어려서 족조(族祖) 해산(海山-휘 慶烋)옹에게 글을 배웠는데 부지런히 읽고 외우니 해산옹이 좋아하여 기대하였다. 자라서는 가난함을 탄식하여, “한갓 글만 일삼아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찌 자식 된 도리이겠는가?”라고 하여 농사로, 때로는 관공서(官公署)의 일로 근면(勤勉)하였고, 근검절약(勤儉節約)하여 위로 부모님이 편안하고 아래로 자식들이 순응하여 집안이 화락하고 부유해졌다. 양친(兩親) 상(喪)에 예제(禮制)가 극진하였고, 죽헌공(竹軒公) 영당(影堂) 이건(移建), 경죽당(景竹堂) 건립, 선대(先代) 산소 석물(石物) 구비, 족보 편찬 등 위선사업(爲先事業)에 정성을 다했다. 공은 1976년 병진대동보(丙辰大同譜)의 도청(都廳)으로 서문(序文)을 찬술(撰述)했다.

 

배위는 진양정씨(晉陽鄭氏) 종경(鍾瓊)의 여(女)로 4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창봉(昌鳳), 영봉(靈鳳), 인봉(仁鳳), 기봉(麒鳳)이고 사위는 창녕 조규갑(曺圭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