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용환(河龍煥)  1892년(高宗 29) ~ 1961년

 

공의 자는 자도(子圖)이고 호는 운석(雲石)이다. 송강공 항(恒)의 11대손으로 농은(農隱) 경칠(慶七)의 증손이고 송담(松潭) 두원(斗源)의 손자며 옥봉(玉峰) 계락(啓洛)의 아들이다.

 

수곡면 효동에서 태어나 성품이 관유(寬裕)하고 예를 행함에 있어 당시의 모범이 되었다. 14세 때 거창 다전의 면우 곽종석에게 학문을 배우고 싶었는데 길도 멀고 나이도 어려 부친이 허락하지 않다가 공이 간곡히 청하니 마침내 허락하여 수곡에서 거창 다전까지 300리 길을 왕래하며 학문을 익혔다. 모친 밀양박씨가 곽 면우의 생질이 되는 인연으로 일찍부터 면우 선생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울 수 있었는데 중재 김황이 쓴 묘표에 “군은 면우 선생에게 중표척손(重表戚孫)이 되어 일찍 귀의하여 왕래하였다”고 되어있다. 공의 나이 20세가 되지 않아 이미 학문이 깊어져 마을 선비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으며, 오로지 아버지처럼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여 부귀영달을 누리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데 전념하였다. 족형(族兄)인 회봉 선생에게도 질정하여 학문의 폭을 넓힐 수 있었기에 공의 학문은 면우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족형인 회봉 선생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회봉 선생의 학문방법을 평생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진양지』에 공은 성품이 너그럽고 문학이 넉넉하여 당시에 명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저서로는 운석집(雲石集)이 있다. 광복 후 진주 성내에 경충사(景忠祠)를 세울 때 개기축문(開基祝文)을 지었다.

 

배위는 해주정씨(海州鄭氏) 기석(琪錫)의 따님으로 1남 4녀를 두었다. 아들은 만기(萬驥)이고 사위는 안동 권태근(權泰根), 해주 정희근(鄭羲根), 연일 정철수(鄭哲洙), 밀양 손영모(孫永模)이다. 문집 「운석집(雲石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