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우현(河愚顯)  1790년(正祖 14) ~ 1822년(純祖 22)

 

자는 무연(武淵)이요, 호(號)는 청계(晴溪)이다. 석위(錫緯)의 아들이요, 할아버지는 삼익당(三益堂) 용(溶), 증조는 우락재(憂樂齋) 명옥(命玉)이며 통덕랑 한주(漢周)의 현손이다.

 

약관에 문장과 필법이 고명하였으며,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드러내는 것을 일로 삼아 여러 번 향시(鄕試)에 합격했으나, 사우(士友)들이 다투어 앞서가려는 것을 보고 후회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어찌 사류(士類)가 숭상할 일이겠는가?”라고 하고, 이후 두문불출하고 과거에 나가지 않고 성리학에 전념하며 후진을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묘소는 가봉리 개곡 섬등 선고 묘아래 진좌(辰坐)이다.

 

배위 전의이씨는 이윤오(李潤五)의 따님으로 이하신(李厦臣)의 손녀요 이 후(李垕)의 증손녀이고 대제학 이언충(李彦冲)의 후손이며 철성 이후춘(李垕春)의 외손이다. 묘소는 가봉리 개곡 백부 묘아래 정좌(丁坐)이다. 아들이 셋인데, 장남은 재원(載源)이고, 차남은 재봉(載鳳)인데 재당숙 준현(駿顯)에 출계했으며, 삼남은 재수(載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