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현석(河炫碩)  1912년 ~ 1978년

 

자(字)는 대경(大卿), 호는 영계(潁溪)이다. 운수당공(雲水堂公) 18세손이요 송헌공(松軒公) 휘 명세(命世)의 8세손이며, 증조는 괴정(槐亭) 치호(致鎬), 조부는 일송(一松) 해관(海寬)이고 청암(靑嵒) 용식(龍植)의 장자(長子)이다.

 

일찍부터 의재(毅齋) 이종홍(李鍾弘) 선생의 사위가 되어 사사(師事)했으며, 뒤에 선생이 병환(病患)이 중(重)해지자 명(命)하여 송산(松山, 又號 而堂) 권재규(權載奎) 선생을 사사(師事)하게 하였다. 사우(師友)들과 함께 의재집(毅齋集)과 송산 문집인 이당집(而堂集)을 간행하였다. 의표(儀表)가 단아(端雅)·청개(淸介)하였으며, 선정(先亭)인 괴산정사(槐山精舍)에서 후진들의 학문을 닦는 데 힘써 일구(一區)의 사표(師表)가 되었고, 유지(有志)들과 힘을 모아 면(面)에 중학교를 설립하는 데 힘썼다. 부명(父命)을 받아 위선사업(爲先事業)에도 혈성(血誠)을 다했으며, 1976년 병진대동보 편찬에 참여하여 후서(後序)를 찬술(撰述)했다. 유고(遺稿) 「영계집(潁溪集)」이 있다.

 

배위는 여주이씨(驪州李氏) 의재(毅齋) 종홍(鍾弘)의 따님과 전주최씨(全州崔氏) 정호(靖鎬)의 따님으로 4남 5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동기(東基), 병기(丙基), 상기(商基), 한기(漢基)이고, 사위는 재령인 이병삼(李秉三), 청주인 한석래(韓釋來), 진성인 이중호(李中浩), 재령인 이영환(李英煥), 장흥인 고재갑(高在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