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   선(河   璿) : 1583년(宣祖 16) ~ 1652년(孝宗 3)

 

자(字)는 사윤(士潤)이요 호(號)는 송대(松臺)이니, 왕자사부(王子師傅) 증좌승지 락(洛)의 손자이며 효자 매헌 경휘(鏡輝)의 아들이다. 아버지 매헌공이 상주성(尙州城)에서 순국할 때 공의 나이는 10세였다. 10세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한꺼번에 여의고 어린 나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올바른 선비의 길을 걷고자 했다. 난(亂)이 끝나자 곧 공부에 전념하여 1613년에 진사(進士)시에 합격하였다. 그 후 조정에서 선비들에게 대책을 구했을 때 5천 자(五千字)의 소(疎)를 올려 당시 시정의 잘못을 지적하니 임금이 비답(批答)을 내려 칭탄(稱歎)하고 다시 그 소장을 묘당(廟堂)에 내려 보내 여러 고관(高官)들에게 읽어 보도록 하였다. 당시 폐단을 통렬히 진술하여 선비의 기개를 드러내었으니, 조정에서 공의 소(疎)를 채택하고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를 제수하였다. 곧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올랐으나 공은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전념하였고 시부(詩賦)에 능하였다. 당시 영의정 백헌 이경석(李景奭)과 영의정 백강 이경여(李敬輿) 형조판서 정세규(鄭世規) 대사헌 홍무적(洪茂績) 등과 교유(交遊) 하였다. 배위는 공인(恭人)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경윤(慶胤)의 따님이며 딸만 넷을 두어 사과공(司果公) 치천(値千)의 5세손 익(榏)의 셋째 아들 자운(自澐)을 입계(入系)하였다. 추연(秋淵) 권용현(權龍鉉) 찬 갈명(碣銘)이 있고 송대(松臺) 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