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달중(河達中) : 1723년(景宗 3) ~ 1799년(正祖 23)

 

자는 군학(君學)이니 송정공(松亭公)의 장자(長子)인 완(琬)의 5대손이고 석계(石溪) 세희(世熙)의 손자요 윤청(胤淸)의 아들이다. 아버지 윤청(胤淸)은 단목문중(丹牧門中) 참봉공(參奉公) 경(憬)의 5대손으로서 석계공(石溪公)이 후사(後嗣)가 없어 입계(入系)하였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스스로 정도(正道)로 나아갈 바를 깨달아 힘써 경(經)과 전(傳)을 살폈으며, 부지런히 집안일을 다스렸다. 필력(筆力)이 정심(精深)하고 힘찼으며 법도(法度)가 있었고, 평생에 언행(言行)이 솔직하고 거짓이 없었다.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연못가에 조그만 정자를 지어 자연을 완상(琓賞)하며 수양과 더불어 학문에 전념하면서 고을의 풍습을 교화하는 데 앞장섰다. 만년(晩年)에 집안에 전해오던 송정공의 유문(遺文)을 정리하여 문집을 간행할 계획을 세우고, 1785년 족제(族弟) 사연공(舍淵公, 諱 致中)을 퇴계학맥의 대학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아우로 안동에 거주하던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에게 보내 교정과 편차를 부탁하였으며, 1788년에는 족제(族弟) 사암공(士庵公, 諱 正中)을 한양의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에게 보내 서문을 받아오게 하는 등 문중의 종손(宗孫)으로서 문중의 힘을 결집시켜 『송정문집』이 판각·간행되게 하였다.

 

초배(初配)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성(쿱)의 따님으로 무육(無育)이고, 계배(繼配)로 연안이씨(延安李氏) 우하(遇夏)의 따님을 맞이하여 2남 4녀를 두니 경태(慶泰), 이태(以泰)와 재령 이윤국(李潤國), 청주 한응의(韓應儀), 전주 최상집(崔祥集), 광주 노일준(盧一俊)이고, 진양정씨(晉陽鄭氏) 헌주(憲周)의 따님을 맞이하여 1남 2녀를 두니 홍태(洪泰)와 연일 정영채(鄭榮采), 울산 김학련(金學鍊)이다. 향년(享年) 77세로 졸(卒)하였고, 묘소는 사곡(士谷) 촌중(村中)에 자좌지원(子坐之原)이며 재령 이일해(李一海)가 지은 묘갈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