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국보(河國寶) : 1539년(中宗 34) ~ ?

 

자는 선재(善哉)이다. 증순충익조공신 자헌대부 병조판서 거원(巨源)의 후손이고 안주목사를 역임한 우치(禹治)의 손자요 승사랑(承仕郞) 숙(淑)의 셋째 아들로, 천성이 순수하고 효우가 돈독하였으며 옛 현인의 기품이 있었다. 1573년(宣祖 6)에 생원(生員)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접고 단지동에 살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진양지(晉陽誌) 인물편(人物篇)에 실려 있다.

 

배위는 절부(節婦) 진주강씨(晉州姜氏)이다. 「진양지(晋陽誌)」 열행(烈行)편에, “하국보(河國寶)의 처 진양강씨는 효자(孝子) 강응태(姜應台)의 손녀이며 사직(司直) 강열(姜洌)의 따님이다. 평소에 부도(婦道)를 잘 지켰으며, 선조(宣祖) 계사면(1593년)의 난에 왜적을 만나 항절(抗節)하다가 죽었다. 금상(今上)의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도 올랐다. 무육(無育)이라 진평군(晉平君) 위보(魏寶)의 다섯째 아들인 증(憕)을 사자(嗣子)로 세웠다. 가의대부(嘉義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여흥(驪興) 민병승(閔丙承)이 지은 묘표(墓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