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   항(河   恒) : 1546년(明宗 1) ~ 1580년(宣祖 13)

 

자는 자징(子徵)이요, 호는 송강(松岡)이니 송강공파(松岡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진평군(晉平君) 위보(魏寶)의 장자(長子)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붕우(朋友)에게 신의가 있어 사람들이 간언(間言)함이 없었다. 송강(松江) 가 관어정(觀魚亭)의 북쪽 백보(百步) 쯤에 정사(精舍)를 짓고 화초를 기르면서 장수(藏修)·양병(養病)하는 장소로 삼고 송강정사(松岡精舍)라 이름 하였다.

 

묘갈명(墓碣銘)

 

진양 하군(河君) 진락(鎭洛)이 그 6대조 송강(松岡) 휘 항(恒) 자(字) 자상(子常) 공의 행록(行錄)을 나에게 보이며, “이것은 지헌(持憲) 이병렬(李秉烈)이 지은 것입니다. 공은 임진왜란 전에 사셨는데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날짜를 모릅니다. 오직 당시 공의 반듯했던 행적은 명망 있는 선비들의 믿을 만한 여러 글에 조금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헌 군이 순수한 것을 모아서 이 행록을 만든 것입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 묘갈명을 지어서 새길 수 있게 된다면 이보다 큰 다행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옛 기록을 보면 옛 사람들 중에 이와 같은 분이 매우 많은데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드디어 명(銘)을 지어 이르기를,

하씨는 고려시대 평장사(平章事)로부터 유명해 고관대작이 계속 빛을 내어 진강군(晉康君)에 이르렀고, 조선에 이르러 거듭 이어졌네. 증조는 휘 우치(禹治)인데 변방에서 목사(牧使)를 지냈고 조부의 휘는 숙(淑)이고 부친은 휘 위보(魏寶)인데, 가정(嘉靖) 무오(戊午, 1558)년에 사마시에 입격하고 바르고 순수하고 행실이 진실 되어 사양함을 즐기고 숨어서 살았네. 참의 이륜(李綸)의 따님께 장가들어 공을 낳으니 범인과 달랐네. 스승과 벗들, 점잖은 분들에게 정이 깊고 너그러우면서 엄격하였으며 학문도 갖추었네. 어머니 상에 여묘살이 할 때 죽을 먹으며 상제를 끝내어 몸이 상하여 위태로웠으니, 효성이 세상에 알려졌네.

강가에 집을 짓고 ‘송강정사(松岡精舍)’라고 이름 짓고 부귀를 쫓지 않고 만족하며 삶을 다하도록 노닐면서 창주(滄洲)·죽헌(竹軒)과 함께 날마다 더불어 기뻐하였네. 일찍이 산사(山寺)에서 독서할 때 중이 유도(儒道)를 업신여기는 것을 보고 화내어 그의 책을 불질러 우리 유도를 높이니 남명 선생이 뛰어나다고 칭찬하였고 지조 높은 선비들이 더욱 우러러 보았는데, 도리어 천수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하늘의 보답도 어긋남이 있네. 둘레 솔 속의 묘는 진주 북쪽 유원(杻院)에 있네.

배위 진양정씨(晉陽鄭氏)는 참의 수견(受堅)의 따님이고, 아드님은 휘 인상(仁尙)인데, 이름과 행실을 잘 닦았네.

아! 공의 사적(事蹟)이 끝내 분명하지 않음을 나무랄지라도, 내가 어찌 글을 꾸몄겠는가? 여러 뇌사(誄辭)에서 따왔다네.

장령(掌令) 정종로(鄭宗魯) 찬(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