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   현(河   灦)  1643년(仁祖 21) ~ 1689년(肅宗 15)

 

공의 자(字)는 여해(汝海)이고 호는 만향당(晩香堂)이다. 단지공(丹池公) 진사(進士) 협(悏)의 장손이며, 구이당 달영(達永)의 아들이다. 효행(孝行)이 탁이(卓異)하여 유생 박사순 등이 공을 정려하여 포양(襃揚)해야 한다고 향장(鄕狀)과 도장(道狀)을 올려 그 아름다운 선행(善行)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현창(顯彰)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에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모부인의 산소가 있는 그 골짜기를 하효자(河孝子) 시묘곡(侍墓谷)이라 일컬으며 공의 효행을 칭송하였다. 남명학파의 핵심으로 활동하였으며, 전주(全州) 허만책(許萬策)이 지은 묘명(墓銘)과 문집 『만향당유집』이 전해진다.

 

배위는 재령이씨(載寧李氏) 통덕랑 여필(如泌)의 따님인데 무육(無育)이라 종제(從弟) 호군공(護軍公) 형(浻)의 장자(長子)인 윤관(潤寬)을 입계(入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