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하응명(河應命)  1699년(肅宗 25) ~ 1769년(英祖 45)

 

자는 성휴(聖休)이고 호는 치와(癡窩)이다. 단지공 협(悏)의 현손이고 만향당 현(灦)의 손자이며 인재공 윤관(潤寬)의 둘째 아드님이다. 문음(文蔭)으로 선교랑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효우로 이름이 났으며 시문(詩文)에도 뛰어나 향시(鄕試)에 수차례 합격하였으나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명리(名利)를 탐하지 않고 오직 학문연구와 자기수양에만 매진하였다. 1767년 죽촌(竹村) 윤일(潤一) 공이 선도(先導)하여 진양하씨보를 중수하려다 손세(損世)하니, 1769년에 공이 이어받아 역사(役事)를 진행하다가 돌아가시고 1770년 오방재(梧坊齋)에서 족보를 인간(印刊)하니 경인보(庚寅譜)이다. 그 서문을 공이 썼다.

 

배위는 재령이씨(載寧李氏) 군수(郡守) 덕화(德華)의 따님으로 3남 4녀를 두었다. 아들은 통덕랑 사죽당(四竹堂) 석호(錫浩), 단사(丹砂) 복호(復浩), 죽오(竹塢) 수호(受浩)이다.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가 지은 행장(行狀)과 족후생(族后生) 겸진(謙鎭) 찬 갈명(碣銘)이 있고 문집(文集) 「치와문집(癡窩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