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동강재

 

 

동강재

 

동강재는 증 한성부좌윤 하수창(河壽昌) 공의 묘소가 이곳 동강에 있어 재실의 칭호를 동강이라 하였다. 하수창(1666-1719) 공은 호군 하비(河備) 공의 9세손이다. 효우와 문학이 독실하였으므로 자손들이 유훈을 전승하고 계술하기 위해 1961년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묘소가 있는 이곳 동강에 재실을 창건하였다.

 

 

동강재기(東岡齋記)

 

하표진 군이 그 일족 영기를 통하여 내게 서찰을 보내어 말하기를, 나의 선조 증 한성부좌윤 휘 수창의 분암으로 동강재라 하는 곳이 있어서 대한민국 신축 이월에 완성되었는데 그대가 기문을 지어주기를 청한다고 하였다. 내 오래 전에 영기 씨를 통하여 밀양의 대항 하씨의 문헌이 성대하다고 들었다. 이제 서찰을 살펴보고는 그 본디 근원이 실로 좌윤공으로 부터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좌윤공은 효우와 문학에 독실하였다. 이를 자손들이 이어받고 가법으로 삼아서 가업으로 계승하는 데 항상 힘썼다. 이 재실로 말하자면 공이 돌아가신 지 240년 사이에 어찌 참으로 지을 만한 기회가 하루라도 없었을까? 돌이켜보면, 묘소아래 가까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쳐다보고 절하면서 마음속으로 애연한 마음이 일어나 세대가 점차 바뀌고 멀어지는 줄도 몰랐으니, 비록 예제가 야제이기는 하였지만 집집마다 재숙하는 곳이 되고 사람마다 제사를 받들려는 책임을 품고 있었다. 이때에 참으로 특별히 재실을 갖출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천하가 어두운 밤이 되고 백성들의 삶은 이산(離散)의 극치에 이르렀다. 하씨 집안에서는 이를 두려워하여 마침내 건물을 갖추는 일을 서둘러 온 가문의 뜻과 생각과 이목을 한곳에 붙들어 놓았다. 대개 동강은 공의 묘소가 있는 산인데 재실을 짓고 그 묘소가 있는 산의 이름을 붙인 것은 공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재실에 다른 표방은 없고 오직 중당을 염수라고 하였는데 시경의 말을 인용하여 공의 덕성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서로 맹세하기 위함이다 무릇 능히 공의 모습을 나타내고 서로 공의 덕성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맹세 하는 것, 장차 잘 계승해 나감에 있어서 이보다 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서찰을 통하여 글에 적힌 것 외에 이 재실을 지은 의도를 알고 이로써 하씨 집안의 문헌이 아직도 시들지 않았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이에 특별히 표출하여 기록함으로써 내 글이 구차하게 지은 것이 아님을 나타내거니와 그 칸수와 규모, 체제 및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공사에 달려든 내용은 서찰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나열하지 않았다.

을사(196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