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두곡정

 

 

두곡정

 

두곡정은 두곡(杜谷) 하용규(河龍奎) 공이 말년에 별업을 지으려고 부지를 마련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다가 그 아들 승운이 선지를 받들어 1918년(戊午)에 창건하여 두곡정이라 편액을 달았다. 두곡공은 호군 하비(河備) 공의 13대손이다. 갑오경장 때에 향천으로 향교의 교임을 맡아 강당을 중수하고 후진을 지도하여 향풍을 진작코자 하더니 경술국치를 당하자 두문불출하고 자호를 두곡이라 하였다. 모암공 하승운은 두곡공의 아들이다.

 

 

두곡정기(杜谷亭記)

 

통(通)의 반대를 두(杜)라 하고 야(野)의 반대를 곡(谷)이라 한다. 세상에 정자를 두는 자는 먼 들판으로 상쾌하게 통하는 곳을 취하는 자가 많은데 나의 벗 하승운은 홀로 두곡을 취하여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 어째서인가? 두(杜)는 수두 사망(守杜四望)의 두(杜)인가? 이두간청(柅杜干請)의 두(杜)인가? 난신복두(難申服杜)의 두(杜)인가? 한비축두(韓非築杜)의 두(杜)인가? 곡(谷)은 합계만곡(合溪慢谷)의 곡(谷)인가? 자신포곡(自신枹谷)의 곡(谷)인가? 곡신불사(谷神不死)의 곡(谷)인가? 위천하곡(爲天下谷)의 곡(谷)인가? 아니면 또한 소달사곡두(疎達謝谷杜)의 두(杜)인가? 그는 말하기를, 아니다. 화악산이 하늘구름 가운데로 우뚝 솟아서 굼실거리며 도사려 영남 고을의 웅대한 진산이 되었는데, 정면은 두 골짜기가 있어서 동편은 평전이라 하고 서편은 봉천이라 한다. 두 골자기의 물이 아래로 쏟아져 하나의 큰 못을 이루면서 깎아지른 절벽이 사방을 에워싸서 휑하고 깊숙한데, 인간계는 보이지 않고 다만 위로 하늘의 해만 높이 떠있을 따름이다. 속어에 골짜기가 끝난 곳을 막혔다고 하는데, 막혔다는 말이나 두는 한 가지 뜻이다. 그러므로 그 땅으로 인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나의 선인께서 그곳의 멀찍하면서 조용한 산수를 좋아하여 일찍이 정자 하나를 세우려고 하시면서 말씀 하시기를 골짜기가 이미 세속과 끊어져 막혔고 나 또한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추었으니, 나같이 세상에서 버린 물건을 세상 사람들이 버린 곳에 두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이다. 라고 하셨는데, 불행히도 일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불초는 감히 선인의 뜻을 잘 계승한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선인께서 남긴 뜻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 허다한 두곡의 설을 억지로 끌어다 맞추어 이리저리 가져와 장황하게 늘어놓아 무엇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나는 이에 벌떡 일어나 말하였다. 그대의 선대인께서는 곧 고려조 두문동의 기풍을 들은 게 아닐런지? 그렇지 않다면 이제 보배로운 누대에 금은으로 벽을 장식한 건물이 곳곳마다 바둑알이나 별처럼 많은데도 어찌하여 그런 것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반드시 궁벽한 절벽 바위 무더기 가운데 새 짐승이나 초목과 짝지어 지냈겠는가? 이는 우주를 초월하여 고금에 통달한 고상한 견해를 가진 자가 아니라면 그 만분의 일이나마 방불한 형용을 더듬어 내지 못할 것이다. 오호라 해와 별이 흐릿하게 어둡고 눈보라가 아득하니 내 마음이 띠풀로 뒤덮이고 담장을 마주한 듯 길을 모른지 오래되었다. 장차 내 수레에 기름을 치고 내 말에 꼴을 먹여서 이 정자 위에서 그대를 따라 손뼉을 치며 고금통색의 이치를 담론하면 되겠는가? 오호라 아아!

정묘년 모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