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추원재

 

 

추원재

 

대곡면 송곡(松谷)에 위치한 추원재는 1988년 무진(戊辰)에 단지공 하협(河悏)의 12세손 우택(禹宅) 공 성식(聖植)께서 후손들과 협의하여 건립한 재실로, 선교랑 치와공(癡窩公) 응명(應命)의 손자 진오(鎭五) 공, 증손 지범(之範) 공과 윗대 조상의 제향을 받들고 있다. 추원재라고 편액을 붙인 것은 먼 조상을 생각하여 근본에 보답하겠다는 뜻이다. 2013년 종손(宗孫) 수봉(秀鳳)이 종친(宗親)들과 의논하여 기와를 새로 얹고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였다.

 

 

추원재기(追遠齋記)

 

단목은 우리 하씨 오백 년 세장이요, 진주의 한 명촌(名村)이다. 남으로 향하여 십리가 못되는 지경에 있으니 봉우리가 수려하고 남강은 그 밑으로 돌아 낮과 밤으로 동으로 흘러가고 좋은 마을이 있으니 송곡(松谷)이다. 산을 등지고 물을 가까이 하여 풍속이 순박하여 은사의 살 곳이 마땅하다. 우리 방 선조 단지(丹池) 하 선생의 첫째 아들의 7세손 휘 경우( 慶宇)가 두 아들 장원(璋源)·기원(沂源)을 거느리고 단목으로부터 여기 와서 산 것은 그 뜻을 돌이켜 생각건대 물에 고기 잡고 산에 나무하고 밭 갈고 글 읽어 성품을 잘 기루었던 것이다. 자손들이 모두 어질고 명민하여 능히 조상의 발자취를 이어 문호를 수립한지 어언간 5~6대가 되었으매, 하루라도 그 할아버지 휘 진오(鎭五) 공과 지범(之範) 공 양세를 위하여 집을 하나 지을 것을 생각한바 아니함이 없었으나 힘이 약하여 이루지 못하였다가 지나간 해 무진년에 여러 후손들이 협력하고 의논하여 사칸 집을 계획하여 송곡의 양지 편에 지으니 제도와 규모가 검소하고 사치한 것이 적중하여 족히 우모하고 재계하고 학업을 연구할 장소가 되었고, 이름을 추원재라 한 것은 선조를 추모하고 근본을 갚는 도리의 뜻을 쓴 것이다.

 

금년 신미년 봄에 후손 성식(聖植)이 나의 계산 정사에 와서 나에게 기문을 묻거늘 감당 할 수 없다고 사양하여도 사양한 뜻을 얻지 못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지금 서구의 풍조가 동방에 범람하여 우리 옛날의 예속을 무찔러 없애버린즉 뜻있는 선비들이 뉘가 탄식하고 슬퍼하지 아니하였으랴. 오직 여러 일가들은 그런 풍조에 빠지지 않고 능히 할아버지를 존모하고 일가들과 화목할 도리를 알아 이루었으니 진실로 말세에 성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으로서 능히 일을 다 하였다고 하지 말고 여기에 일가들을 모아 반드시 화목한 정의를 이룰 것을 강론하고 또 수호하며 가히 추원보본의 도리를 다하였다고 할 수 있고 이재실의 수명 또한 무궁할 것이니 어찌 서로 더불어 힘쓰지 아니하랴.

신미(1991년) 사월 중순